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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진술 하나만 남은 법정 — 성범죄 무죄 변론의 구조와 실제

작성자 BK파트너스 작성일 2026-08-19 조회수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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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진술 하나만 남은 법정 — 성범죄 무죄 변론의 구조와 실제


성범죄 혐의로 필자를 찾아오는 이들의 첫마디는 대체로 같다. "제 말을 믿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이 유형의 사건에는 물증도 목격자도 없고, 기록에 남은 것은 상대방의 진술과 그에 대한 수사기관의 요약뿐인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필자는 이 구조를 절망의 근거로 읽지 않는다. 유죄의 근거가 오직 하나의 진술이라면, 그 진술이 형사재판에서 요구되는 증명력을 갖추었는지가 사건의 전부가 되기 때문이다.


성인지적 관점은 증명의 기준선을 낮추지 않는다.

범죄사실의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고, 유죄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주는 증거에 의하여야 하며, 그러한 증거가 없다면 설령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대법원 2002. 12. 24. 선고 2002도5662 판결, 대법원 2023. 9. 14. 선고 2021도13708 판결). 이 원칙은 성범죄라는 이유로 완화되지 않는다. 대법원은 성인지적 관점을 유지하여야 한다고 하면서도, 그것이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제한 없이 인정하여야 한다거나 공소사실을 무조건 유죄로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진술 내용 자체의 합리성·타당성뿐 아니라 객관적 정황과 경험칙에 비추어 증명력을 인정할 수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분명히 밝혔다(대법원 2024. 1. 4. 선고 2023도13081 판결). 즉, 성인지적 관점은 진술을 가볍게 배척하지 못하게 하는 장치이지, 증명의 기준선을 낮추는 장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신빙성 판단의 4가지 축을 정확히 붙잡아야 한다.

직접증거로 사실상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한 경우, 그 진술에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신빙성이 있는지는 ① 주요 부분이 일관되고 구체적인지, ② 논리와 경험칙에 비추어 합리적인지, ③ 진술 자체로 또는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과 모순되지 않는지, ④ 허위로 불리한 진술을 할 동기가 있는지를 종합하여 판단된다. 여기에 법원은 조서에 남지 않는 증인의 태도와 진술의 뉘앙스까지 더한다. 그러므로 높은 증명력을 요구하는 추상적 변론보다, 합리적 의심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특정하는 변론이 강하다고 할 것인데, 합리적 의심이란 모든 의문이 아니라 증명이 필요한 사실과 양립할 수 없는 사실의 개연성에 대한 합리적 의문을 뜻하고, 관념적 의심이나 추상적 가능성은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승부처는 진술과 객관적 자료의 정합성이다.

최근 필자가 변론한 성범죄 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된 사안들의 논증 구조는 서로 닮아 있다. 강제추행미수 사건에서 법원은 피해자를 눕혔는지 여부와 피고인의 자세 등 핵심 부분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고, 사건 직후 술자리를 계속한 정황과 신고 경위가 납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편, 준강간 사건에서는 편의점에서의 행동, 음주 정도, 성관계 당시의 의식 상태, 휴대전화 사용 내역이 '몸에 힘이 없어 움직일 수 없었다'는 진술과 모순된다는 점이 판단을 갈랐다. 여기에서 구별할 것이 있다. 사소한 표현의 차이나 기억의 흐림을 나열하는 방식은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는 점이다. 겨냥할 지점은 항거불능 상태의 존부, 폭행·협박의 유무, 접촉의 부위와 방법처럼 구성요건의 중핵에 닿는 부분이 객관적 자료와 어긋나는지 여부이다.


고의만을 다투는 사건은 논리가 다르다.

대법원은 객관적 행위는 인정하면서 주관적 구성요건만을 부인하는 사안에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더라도 피고인의 주장과 제출 증거, 객관적 정황과 경험칙에 비추어 그 진술만으로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2024. 1. 4. 선고 2023도13081 판결). 다만 강제추행죄에는 고의만으로 충분하고 성욕을 자극·흥분·만족시키려는 동기나 목적까지 요구되지 않으므로, '그럴 의도가 없었다'는 진술의 반복만으로는 부족하다. 접촉의 경위와 신체적 여건, 공간의 구조와 혼잡도처럼 고의를 부정할 외부적 사정을 자료로 세워야 한다.


해서는 안 되는 변론이 있다.

피해자의 사후 대처가 통념에 맞지 않는다는 공격은 거의 예외 없이 실패한다. 대처 양상은 성정과 가해자와의 관계,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므로 '마땅히 그러한 반응을 보여야 하는 피해자'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정만으로 신빙성을 배척할 수 없고, 이는 추행 즉시 항의하지 않았다는 사정도 마찬가지다. 사설 기관의 진술 분석 보고서로 맞불을 놓는 방식 역시 권할 바가 아니다.


사실심의 승부는 증인신문에서 갈린다.

19세미만피해자등의 영상녹화 진술은 피의자·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피해자를 신문할 수 있었던 경우 등에 한하여 증거로 할 수 있다(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30조의2 제1항). 반대신문의 기회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실질적으로 확보할 것인지가 초기 전략의 핵심이며, 증거보전의 특례도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같은 법 제41조 제1항). 그리고 진술의 신빙성에 관한 법원의 판단은 실질적 직접심리주의에 따라 상급심에서 쉽게 뒤집히지 않는다. 제1심이 증인신문을 거쳐 무죄로 판단하였다면 항소심에서 일부 반대되는 개연성이 제기된다 해도 제1심이 일으킨 합리적 의심을 해소할 정도에 이르지 않는 한 유죄로 번복할 수 없고, 반대로 유죄 판단을 뒤집으려면 제1심이 이미 고려한 정황의 지적을 넘어서는 특별한 사정이 필요하다.


합리적 의심은 창작되는 것이 아니라 기록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억울함의 크기를 호소하는 진술서는 재판부를 움직이지 못한다. 움직이는 것은 상대방의 진술이 스스로 어긋나는 지점과 객관적 자료와 충돌하는 지점을 하나씩 대조하여 제시한 서면이다. 구속되어 있다는 사정도 준비를 멈출 이유가 되지 못한다. 사건 당시의 동선과 대화, 주변인의 기억, 확보해야 할 자료의 목록을 정리하는 일은 접견실에서도 가능하고, 그 목록이 첫 기일 전에 변호인의 손에 들어와 있는지 여부가 판결문의 결론을 바꾼다. 무죄를 다투기로 결심하였다면 순서는 분명하다. 감정을 앞세운 반박이 아니라 검증 가능한 사실부터 쌓아 올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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